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시집은 아주 여유로울 때 비로소 집어들게 되는 책이라,
내내 H의 책상 위에 있던 시집을 그동안 보고 지나쳐만 왔다.

오늘은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 펼쳐보았다.
시는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운다. 마음껏 상상하고 느낄 수 있어 좋다.

같이 비가 내려요 

– 이수명

당신이 가고 나무를 태웁니다. 당신이 가고 당신을 태웁니다. 너무 환합니다. 같이 식사를 해요 같이 풀밭을 건너요 풀밭에서 왜 우냐고 당신이 물어봅니다. 당신이 가고 사람들이 합창을 합니다. 같이 여기를 떠올려요 같이 잔을 들어요 착한 술을 기울여 조금 마시면 죽어가는 피부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가고 개미를 봅니다. 개미는 너무 많습니다. 땅으로 들어갔다가 구멍이 뚫리며 개미들이 일제히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당신이 가고 개미들이 사뭇 두 발을 뒤덮습니다. 발에서 기어 다닙니다. 당신이 가고 오늘을 태웁니다. 같이 비를 내려요 발을 들어 빗물을 툭툭 걷어차면 굳어버린 들판이 여기 있습니다. 같이 비가 내려요 당신이 가고 당신이 옵니다. 같이 붉은 페츄니아를 따라가요

율이가 멀리 있지만 여전히 같이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