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적을 듣고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은
사실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먹거리를 찾았다는 뜻과 동일하다.
즉, 스스로가 진짜 구린 지점이 있고 나도 그걸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기분이 안 좋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해당되지 않으면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없을테니 말이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아침에 나서는데 날이 쌀쌀하다고 얘기하니
h가 오늘 월간저녁인데 안 춥겠냐고 물어봤다. (긴 옷을 안챙겼었다)
오늘이 월간저녁임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h는 어제 나눴던 얘기를 하며
내가 월간저녁을 잊은 것처럼 그 남자도 그런 것 아니겠냐는 얘기를 했다.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린 남자에 대한 얘기였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어떻게 결혼기념일을 까먹냐며,
캘린더를 안 쓰는 사람이라도 그날만큼은 캘린더에 기록해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 사람은 사실 노력과 성의 부족이라고 노발대발(?)을 했었다.

그랬는데 나도 오늘 똑같이 까먹은 것이다.
h는 말했다. 내로남불이지 않냐고, 그러니 그런 상황에 대해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라고.

어제 그 남자를 비판했을 때 나의 마음은 “나는 절대 그럴 일 없어” 였다.
근데 오늘 그것과 다름없는 일이 일어났고
사실 월간저녁이 결혼기념일과는 다른 중요도를 갖는 날이라는 알량한 변명이 마음속에 떠올랐지만
그 변명 조차,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 찾은 핑계임을 알기 때문에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이런 변명이 마음속에 여전히 떠오르는 것을 보고
아직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 받아들이기 싫을 때 결국 기분이 안 좋게 된다.
결국 잘못은 잘못이니 혼나야 마땅하다는 마음과
그~렇게 잘못한 것 또는 같은 잘못은 아닌데 싸잡혀 욕먹는다는 물타기의 마음 둘다 있어서 분하기 때문이다.

내로남불 하지 말자라는 너무나도 명백하고 단순한 명제 앞에서도
쩔쩔매는 내 자신이여..
앞으로는 누군가를 욕하기 전, 그 비판의 날을 내 목에 먼저 세워보는 연습을 해보자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