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무조림과 밀프렙을 거치며, 요리와 조금 더 친해진 것 같다.
먹고 싶은게 생기면, 한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요리여도 한번 만들어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밀프렙을 먹다보니 오이피클이 곁들임 음식으로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레시피를 찾아봤더니 생각 외로 훨씬 간단한 걸. 이 정도면 퇴근 후에도 할 수 있지. 바로 오이를 주문했다.

먼저 오이피클 담을 병을 열탕소독했다. 안전하게 하려고 냄비 바닥에 행주를 깔고 그 위에 병을 올렸다.
내가 지금 행주까지 깔아가며 병을 소독하고 있다니.
살림 정복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건가 싶어 괜히 우쭐한 느낌이 들었다.

레시피대로 물 600ml, 식초 300ml, 알룰로스 300ml, 소금 2.5스푼, 피클링 스파이스 2스푼을 넣고 약불에 10분 넘게 끓였다. 오이를 손질하고 파프리카와 고루 섞이게 병에 담았다. 그리고는 끓인 소스를 병에 부으니 끝이었다.
하루정도 숙성이 필요해 아직 맛은 보지 못했지만,
초록, 노랑, 빨강이 알록달록 어우러진 모습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오늘은 요리를 하면서 평소와 다른 마음가짐을 가져보았다.
빨리 완성하는 걸 목표로 두지 않았다.

얼마 전 급하게 간장을 꺼내려다, 그 앞에 있던 올리브유 병을 넘어뜨려 하나 깨먹을 일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뭐든 서둘러 하려 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해치우려 들지 않고, 하나를 하더라도 급하지 않게 차근히 하려고 했다.
오이를 썰 때도 두께를 최대한 일정하게 맞추는 데 집중했다.
속도가 느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수분이 많아 칼에 달라붙는 오이를 검지로 하나씩 떼어가며,
가지런하고 일정하게 썰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마음도 한결 평화로웠고, 수습해야 할 사고(?) 같은 것도 생기지 않으니
오히려 그렇게 느린 것 같지도 않았다.
운전할 때 조금이라도 빨리 가겠다고 이리저리 급하게 차선을 바꿔도
결국 도착 시간은 몇 분 차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리 뿐 아니라 만사를 이런 마음으로 하나씩 해나가봐야지.
느림과 찬찬함의 미학을 몸에 익히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