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처음 드랙쇼를 봤다.
*드랙 : 라이브 공연의 한 장르로, 분장과 공연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로 정의되고 있다.

드랙은 예전에 H를 통해 접했었는데,
그때쯤 코로나가 터져 공연은 보러 가지 못했었다.
그러다 최근 서울에서 다시 쇼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예매를 했다.
한번은 보고 싶었던 쇼라 기대가 컸는데, 막상 가는 길에는 그곳의 분위기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아 약간 떨렸다.

무대 조명이 켜지고, 드랙퀸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꺼운 화장, 화려한 의상, 역동적인 표정과 몸짓까지.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이미지였다.

무대에 오른 드랙퀸들은 디바의 노래를 재현하고, 춤을 추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 곡들이 있었는데
공통점은 디바의 노래나 라이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현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공연을 보며 처음 들었던 생각은,
대부분의 공연곡이 가창곡이고, 노래를 부르는 게 공연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내가 공연자라면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고 립싱크(?)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 답답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가치가 낮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였다.

나만의 해석으로 표현한다 하더라도,
내가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고 어쨌든 누군가의 노래를 따라 하며 재현하는 방식이라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근데 공연을 다 보고 나니, 이것만의 매력과 감동이 있었다.
자리가 뒤쪽이라 제대로 못 봤는데, 다음에는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낯설고 이질적이라 공연에 집중을 못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드랙쇼를 기존의 공연 형태와 비교하여 받아들일 게 아니라 새로운 문법의 공연으로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제 30년이 된 드랙쇼지만,
아직도 이 쇼에 대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고,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들은 더 적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들은 꾸준히 그들의 길을 간다.
이것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기시감이 들었다.

너무 뜬금없는 연결일 수도 있지만, 스타트업을 떠올렸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람들은 주로 기존에 사용하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일단 저항이 있고 알던 것과 비교하여 보려고 하기 때문에
어쨌든 처음에는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메이커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온전히 전달되는 데에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고, 대부분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 조건 속에서 30년을 이어온다는 건 어떤 것일까.
우리도 우리만의 길을 오래오래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드랙쇼를 보며 일에 관한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관련이 없는 공연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접점이 있는 걸 보면,
꼭 일과 연관된 것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내 세계가 확장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을 게을리하지 않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