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은 주로 주말에 조용하지만,
연휴 때는 근처 월드컵공원이나 방송국쪽에 왔다가 밥을 먹고 가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연휴에 주차 전쟁이 왕왕 있다.

오늘도 인천에 갔다가 돌아오니 주차장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전화를 했더니 금방 오신다고 했다.
5분 후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거리가 좀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얼른 가겠다고.
그래서 얼마나 걸리시냐 물었더니
택시타고 가고 있는데 30분은 걸릴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알겠다고 30분 뒤에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다른 곳을 찾아 잠시 주차해뒀다.

30분이 지나고 카페 갈 짐을 다 챙겨서 나왔다.
차 주인은 아직 안왔고 주인집 어머니와 아버님이 나와 계셨다.
오늘은 그 차 1대만 무단주차를 한 게 아니라 3대가 일렬로 주차장 전체를 막고 있었다.
나머지 차들은 다 뺐고, 우리 주차장을 막고 있는 차주한테도 전화를 하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매번 이렇게 마음 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거기 서서 한 10분을 기다렸을까.
갑자기 빈 차에 시동이 걸렸다.
곧 나타날 줄 알았는데 거의 10분이 지나서야 차주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죄송하다면서 바로 차에 타곤 도망가다시피 황급히 빠져나갔다.
근데 참 희한한 건, 골목길을 보고 있었는데 멀리서부터 차주가 뛰어온 게 아니라
어떤 건물에서 중간에 튀어나왔다.
차주는 운동복을 입고 운동 가방, 운동 음료를 들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머리는 살짝 젖어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듯해 보였다.
공교롭게도 차주가 갑자기 등장한 위치는 크로스핏과 테니스장이 있는 건물이었다.

상황을 복기해보니 처음 전화를 했을 때 차를 빼달라고 말씀드리니
차를 빼기가 어려운 상황이냐고 되물어왔었고,
주차를 해야하는데 차가 막고 있어서 주차를 못한다 답했었다.
그리고 바로 오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지만,
이내 내가 다시 전화를 걸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는 (얼마가 걸린다는 얘기도 없이) 문자가 왔었다.

이런 상황들을 조합해보니 그는 어떤 이유들로
자신이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와도 괜찮다는 판단을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주가 도착하자 주인집 어머니가 도대체 이렇게 차를 세워두고 가면 어쩌냐고 혼을 내주셨다.
그러면서 여러 얘기를 들려주셨는데
오늘 무단주차한 어떤 다른 차는 고작 5분밖에 안 지났는데 왜 난리냐며 되려 화를 냈고,
또 이전에는 등기부등본을 보여달라고 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심지어 주차장 바리케이드를 걷어내고 들어와서 노상방뇨를 하고 간 사람도 있다고.

이제는 더 이상 상식이라 말할 수 있는 상식이란 없는 걸까.
다자이 오사무의 책 인간실격이 생각나는 밤이다.